■ 본 편은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만에 돌아온 경건한 유대인 중 한 명이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귀환 후 그 시인은 포로생활 하던 때를 생각하며 눈물로 한탄의 시 내지 눈물의 애곡 시를 지었습니다. 첫 구절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1절)" 에서 그의 애곡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Q. 그들은 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을까요?
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 숱한 수모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일본시대에 수모를 겪었던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수모나 괴로움이라 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고자 노력할 때 따르는 제약과 소외됨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바벨론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이같이 말합니다. "~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3절)" 하며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척 했지만 그 속내에는 악한 의도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능력 있는 하나님이라면 왜 너희들이 포로생활을 하는 것이냐?'는 식으로 조롱하면서 조소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경건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왜 이렇게 안 돼?' 하면서 은근히 마음을 긁고 상하게 하는 것이지요.
Q. 그들은 조롱하던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나요?
유대인들은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4절)" 하면서 당당히 거절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의미하는 바벨론에서 숱한 유혹들이 우리 앞을 지날 때가 많습니다. 또한 세상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불이익이나 괴로움을 당할 수도 있지요. 그러다가 타협하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그런 제약과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애굽의 보화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 고난 받는 것을 선택했던 모세처럼 당장의 유익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기준 삼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선한 행실로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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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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